춘천은 지대가 낮다. 주변 도시나 마을로 나갈 때 북한강이나 소양강 물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번에도 춘천 자전거 카페 ‘북한강’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부귀리 임도는 소양강변의 신북 율문리에서 출발하면 정확하게 원점회귀할 수 있다. 부귀리 임도의 매력은 첫째 춘천과 양구를 잇는 배후령 옛길을 자전거로 달릴 수 있다. 둘째, 임도 마지막에 이르러 오봉산 청평사에 들른 후 배를 타고 잠깐이나마 호수를 건너는 낭만도 맛볼 수 있다. 이번에는 신북의 율문리가 아닌 춘천의 공지천에서 출발해 소양강을 따라 다소
강촌 임도는 춘천과 가평군 경계에 걸쳐 있다. 북쪽으로 북한강을 마주 보면서 굴봉산과 새덕산, 그리고 두리봉과 봉화산 사이를 비집고 이어지는 임도이다. 서울에서 휴일에 경춘 철도를 이용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매년 강촌 챌린저 산악자전거 대회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임도를 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대부분 능선과 계곡을 따라 올가미처럼 둥글게 그려지는 임도는 그 안쪽으로는 검봉산(529m)과 명승 구곡폭포를 품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북한강이 흐른다. 춘
빼어난 산세와 밀림처럼 우거진 숲으로 이어지는 충북 제천 백운산 임도의 명성을 듣고 언젠가 한 번 꼭 찾아가 보리라 마음 먹던 차에 마침 그곳에 터 잡은 김석진 선생님의 추천으로 아내와 함께 제천으로 출발했다. 참고로 김석진 선생님과 나는 퇴임 때까지 매일 한강을 따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함께했다. 높이 1,086m의 큰 산인 백운산은 원주와 제천 경계에 있으나 우리는 남쪽 제천 임도를 타기로 했다. 운학천과 원서천이 만나는 덕동교 주변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니 한겨울처럼 윙윙대는 바람이 강하고 매서워 오늘 일정이 쉽지 않을 것을
본지에 ‘화촌 일기’를 연재하던 이남석씨가 새롭게 ‘임도 라이딩’을 시작한다. 고등학교 교사로 평생을 일한 그는 은퇴 후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에 귀촌해 일상사를 글로 풀어냈다. 하지만 그의 본업이라 할 만한 전문영역은 ‘오지 자전거 여행’이다. 그는 2008년부터 네팔·인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중국 히말라야 오지를 비롯해, 아프리카 북부, 유럽, 남미 안데스산맥 등 세계 곳곳의 고산 임도(1,000~5,000m)를 자전거 야영으로 누빈 국내에서 손꼽히는 ‘임도 라이딩’ 전문가이다. 그의 노하우를 빌어 국내 MTB 임도 코스를 소개
이렇게 긴 가을장마는 처음이다. 숲의 버섯들은 포자를 만들어 퍼트릴 새도 없이 썩었으며, 떨어진 열매는 흙에 묻히기도 전에 싹을 냈다. 그렇다고 계곡 수량이 풍부해진 것은 아니다.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간 짐승들은 절기를 어긴 환경과 기온에 갈팡질팡하고, 부엉이와 올빼미들이 야밤에 노래하는 위치도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짝을 찾기 위해 암수가 주고받는 곡조도 어색하다.마을의 어떤 농부는 바짝 마르라고 뽑아놓은 고춧대가 다시 잎을 내면서 꼿꼿이 서는 것은 이번 가을에 처음 봤다며 길어지는 가을장마를 표현했다. 이번 가을은 느리고 눅눅하다
태풍은 주로 초가을에 지나간다는 얘기는 자주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곡식이 여물기 시작하는 계절에 장마가 시작된다는 걸 이번에 처음 경험했다. 올해는 비가 남쪽으로만 쏟아 붓고 중부지방은 늦여름 가뭄이 심해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비는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계곡은 넘치고 모래나 바위틈에서 간신히 생명을 보전하던 가재들이 불어난 웅덩이 안에서 더듬이로 수위를 쟀다. 그런데도 이튿날 공작산 노천 저수지 수위를 보니 별 변화가 없었다. 아직도 강수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증거였다.김
입추 지나자 산골은 서늘해졌다. 가래나무는 색이 바랜 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하고, 밤알만 하던 가래 열매는 호두 크기로 자라 이른 아침 청설모들이 나뭇가지를 건너뛰며 식량 관리로 분주하다. 산 열매들이 익는 시점을 정확하게 알려면 청설모나 다람쥐들이 언제 잣이나 가래 같은 열매를 따서 모으기 시작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여름장마 없이 비가 6월에 집중되는 바람에 저수지의 수량은 줄고 계곡은 바닥을 내비치는 중이다. 숲은 알맞은 습기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썩 유쾌하지는 않다. 바로 바다를 끼고 있는 열대 혹은 아열대 지
홀로 국내 자전거 여행에 나섰다. 출발하기 이틀 전부터 집 주변 잡초도 예초기로 말끔하게 정리하고, 고추에 약을 치고 지지대를 세워 웃자란 고춧대를 단단하게 지지해 놓았다.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열흘 이상은 걸리는 여정이다.자전거로 국토를 돌아보는 여행만 7번째이지만 준비하는 동안 마음이 설레는 건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더구나 여행 중 생길지도 모를 사고에 대한 두려움은 오히려 더했다. 다만 전에는 일산에서 출발했으나 이번에는 홍천에서 시작하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집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페달을 밟았다. 습기를 담은 공기
중년을 넘어선 사람들은 머릿속에 저장된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주변의 사물이나 환경의 변화를 살피고 앞을 예측한다. 지난 세월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날씨 변화이다. 오랫동안 농사지어 온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과학자들의 연구나 환경연구가들의 통계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더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다.예를 들면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가을에 단풍 드는 것만 봐도 다음해 농사를 가늠하며, 겨울에 쌓이는 눈의 깊이를 보고도 봄에 강수량이 얼마나 될지를 예측한다. 가을에 나뭇잎이 단풍 들기 전에 마르면 봄 가뭄을 예상하
나긋한 바람 뒤로 습기를 품은 구름이 비를 뿌리자 숲을 채운 나무와 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의 잎눈이 터지면서 보일 듯 말 듯 엷은 초록은 숲 낮은 곳부터 시작해 점점 높은 봉우리로 번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넓은 초원에 천천히 접근하는 구름 그림자와 같았다. 숲이 그리는 수채화의 초벌 그리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색을 입히는 붓질이 시작된 셈이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이 풀이다. 먹을 게 풍부해지니 노루나 고라니들은 짝을 찾느라 분주하고 반려자를 정한 새들 역시 터를 정하고 집을 짓는 데 필요한 풀뿌리나 떨어진
산골에 정착한 지 1년이 넘어가면서 일상의 흐름이 자리를 잡았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 하고, 일이 있으면 두려워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오전에는 대체로 밭일을 하고, 오후에는 집 주변 계절별로 해야 할 일을 진행한다. 봄에는 나무를 심거나 가지를 잘라주고 무너진 축대 등을 보수하며, 여름에는 비에 대비해서 수로를 정비하고 풀을 베는 일이다.남은 시간에는 여가 활동을 한다. 자전거로 공작산 고개를 넘어갔다가 오거나, 춥거나 일기가 좋지 않은 날에는 방에서 평로라(제자리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발판)를 타는 게 중요한 일과다. 일주
입춘과 정월 초하루가 지났음에도 기온이 널뛰기를 반복했다. 그 바람에 땅속에서 해동을 기다리던 곤충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고라니나 멧돼지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주말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였는데 먹이를 구하지 못한 새들이 우리 집 마루까지 몰려들었다. 이후 날이 풀려 눈 두께가 줄어들기는 했어도, 아직 심산 응달에 쌓인 눈은 요지부동이다.올봄에는 햇빛이 많이 드는 양달로 장독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옮길 땅을 고르고 주변 나무를 벤 후 손수레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길을 냈다. 산골에서 일하다 보면
겨울을 품은 숲은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움 틀었다. 숨어 잠자는 생명과 잎을 떨군 나무는 조용히 봄을 기다린다. 겨울은 새로운 세계다. 추위가 절정에 이르면 빙판 같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조차 숲에 도착하는 순간 얼어버리고, 뿌리와 가지는 생명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쓴다.푸른 것은 부드러운 흙과 단단한 암릉 사이에 뿌리를 비튼 소나무와 풍부한 부엽토를 차지하려 땅 얕은 곳으로 길게 뿌리와 심줄을 늘이고 몸을 곧추세운 잣나무가 유일하다. 옛 사대부들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고귀한 기상을 품은 절조 있는 선비에 비유해 칭송했다
산골의 겨울밤은 길고 조용하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 동안 평상시에는 들리지 않던 샘에서 물이 어는 소리를 따라간다. 골에서 일어난 빙산 같은 바람이 언 가지를 후려치다가 훅 가랑잎을 날리며 숲 사이를 빠져나가는 소리를 좇기도 한다. 마치 섶에 불이 붙어 맹렬하게 타오르는 소리를 닮았다. 어떤 때에는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낮에 불을 피웠던 화덕이 있던 자리를 확인한 적도 있었다. 소나무 가지가 비틀어질 정도로 추울 때 나는 소리와 날이 풀리고 땅이 꺼질 때 대기를 훑는 소리가 다르다. 긴 겨울밤, 생각은 과거와 현재
산에 살면서 산에 올라간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파른 산길을 타고, 산을 오르는 일은 언제나 특별하다. 일상의 또 다른 공간이고 사색의 이탈을 경험하는 일이며, 무엇보다도 숲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일을 멈추고 뒷산을 오르며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니, 여름이나 초가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땅에 수북이 떨어졌던 가래나무 열매나 도토리는 거의 사라지고, 낙엽도 두께가 점점 얇아져 가고 있었다. 가을비를 맞아 수분을 흡수하면서 잎이 곧게 펴지고 부드러워지자 땅에 닿은 부분이 썩기 시작했다. 켜
숲에 정착한 지 벌써 한 해가 되어서인지 생각이 많아졌다. 김장할 만큼 고추를 수확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숲에서 사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는 기쁨이 컸다. 지난주에는 잠깐 눈이 내리더니 계속 영하권에 머물렀다. 요 며칠에서야 평상 기온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온 산의 나뭇잎이 급작스러운 추위에 놀라 우수수 떨어졌고, 짐승들 걸음 소리도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얼마 전 금수산 밑에 은거하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위장이 좋지 않아 백약을 써봤지만 차도가 없어, ‘백출’을 구할 수 있으면 보내 달라는 부탁이었다. ‘창
긴 장마가 지나자 도랑물은 하루가 다르게 줄었다. 숲 사이로 새끼를 몰고 다니던 새들도 모두 어디론가 떠났다. 밤이 되면 부엉이 우는 소리가 골짜기에 선명하게 퍼지고 알밤이 떨어지기 시작한 밤나무 밑으로 다람쥐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샘가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추석이 지나자 아침 기온이 크게 떨어지고 숲은 더 무거워졌다. 이제 한 번만 더 비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면 단풍이 들 기세다.얼마 전,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다가 퇴임한 지인이 찾아왔다. 하룻밤을 함께 지내며 소회를 풀어놓았다. 승객
긴 장마가 지나자 숲은 더 깊어지고 신비로워졌다. 꾸준히 내린 비로 땅속 깊은 곳까지 습기를 보존한 덕분에 때를 기다리던 온갖 버섯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며칠 전 도광터로 돌아오는 임도를 자전거로 달리다 보니 활엽수 밑에 말굽버섯과 따귀버섯이 올라와 있었다.새로 뻗은 나뭇가지들은 껍질에 강인한 심줄을 더해 사나운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꽃을 떨어뜨리고 과육을 부풀렸던 수종들은 빛을 모아 알맹이를 익히기에 바쁘다. 낙엽과 이끼로 희미하던 계곡은 폭우로 불어난 물에 갈리고 닦여, 바닥에 누웠던 돌들이 제 빛깔을 찾았다. 맑은 물이
오늘은 산골 사람들이 의지하던 민간신앙 얘기를 해볼까 한다. 산골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은 가을걷이가 끝나면, 십시일반 곡식을 추렴해 서낭당이나 당에서 제를 올렸다. 강원도에서는 서낭당을 줄여서 ‘서낭’이라고도 불렀으며 서낭당 옆에 당집이 함께 있기도 했다. 서낭당은 대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나 높은 고개에 있었다.그곳에는 어김없이 오래된 느티나무나 팽나무, 드물게 소나무나 음나무가 있으며 대개는 자연적으로 자란 것이지만, 나무를 심은 사람의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처럼 생각해 신령스럽
화촌에 정착해 집 주변을 정리하고 가꾸니, 사람 사는 모양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풀 베고 잡목으로 밀림처럼 우거졌던 묵정밭도 거대반(거의) 일궜다. 이제 해가 뜨고 내려앉는 방향으로 숲이 색을 바꾸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소리만 들어도 땅이 품고 있는 습기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해거름이 되면 일을 중단하고 흩어진 농기구를 닦아 제자리에 걸어놓고, 장독 뚜껑을 덮는다. 그리곤 집 앞에 우뚝한 가래나무를 쳐다본 후 방 안으로 들면 곧 밤이다.강원도 인제 산골인 화촌에 처음 내려올 때만 해